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農의 초입에 서서 본문
農의 초입에 서서
6월의 작물들
지금 6월 초순인데 농사에서는 벌써 수확량이나 품질이 결정 난 것도 있고, 아직 심지도 못한 것들이 있다. 결정난 것들은 마늘과 양파, 과일류이다. 요새 한창 수확해 먹는 것은 쌈종류와 고추, 야채 등이고 아직 심지도 못해 앞을 가늠할 수 없는 것들은 콩과 수수, 들깨, 참외, 조선오이, 벼 등이다. 물론 모종이나 씨앗을 뿌려 한창 자라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마늘과 양파는 지난해 가을에 심었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거름을 더 주거나 물을 더 준다고 해서 작황이 좋아지거나, 좀 가물거나 양분이 부족하다고 해서 특별히 나빠질 게 없다. 요즘 양파는 ‘얼릉 수확하시오’ 라는 의미로 드러누웠고, 마늘은 마늘쫑을 길게 늘어뜨리고 줄기 끝은 노랗게 시들어가고 있다. 마늘은 쫑이 올라올 때 그것을 뽑아주면 수확량이 17%가 증가한다는데 난 그것을 몰라서 그냥 방치한 까닭에 억세게 쇄버렸다. 물론 수확량도 17%가 줄었을 것인데, 그건 잘 모르겠다. 이런걸 미리 알았다면 쫑을 죄다 뽑아 볶아먹고, 마늘 수확량도 늘리는 일석 이조가 되었을텐데 이도 저도 못해 일거 양실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마늘과 양파에 있어서 올해의 수확량은 남들에 비하면 보잘것없이 작고 적지만, 지난해 내 농사에 빗대어 보면 아주 풍작이다. 지난해에 처음으로 마늘과 양파를 심었는데, 비닐 멀칭 하나 믿고 풀도 매지 않고 그냥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에게 맡겨 두었다. 이른바 태평자연농법인데, 이맘때 수확을 하러 갔다가 풀 속에 갇혀있는 작물을 보고 깜짝 놀랬다. 양파는 마늘이 되어있고, 마늘은 콩알만한게 간간이 줄기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늘과 양파는 본시 양분을 충분히 빨아들여야 잘 자라는 작물인데 난 그것도 모르고 물빠짐이 좋은 마사토에 비닐 멀칭만 하고 심었었다. 그것도 제대로 심경쟁기질을 해주고 밑거름을 줬으면 모를까 그냥 구멍 뚫고 꽂아만 두었던 수준이었다. 거기에 비료도 안주고 농약도 안치고, 심지어 풀도 뽑아주질 않았기에 수확할만한 게 실상 없었다. 그런 까닭에 지난해 양파농사를 짓고도 마을에서 두 망태기나 양파를 사 먹어야 했다. 마늘 또한 한 접도(한 접은 약 백개의 줄기) 채 나오질 않아서 처갓집에서 한망태기를 얻어다 먹었다. 그랬던 게 올핸, 양파가 세망태기를 넘고 마늘도 두접이 넘게 생산되었다. 일년만에 두배의 소출을 냈으니 풍작은 풍작이다. 풍작은 과일에도 있다. 지난해에 처음 피자두 나무를 알아보고 100여개의 피자두를 따 먹었다. 올해 초 겨울에 나무가 곧게 자란 가지들을 죄다 전정을 했다. 그랬더니 올해 피자두나무에는 자두가 정말 수백개가 열렸다. 나무에겐 아픔이지만, 많이 잘라줄수록 더 살기위해 가지를 뻗고 싹을 틔어 종자보전을 위한 열매를 많이 맺는게 나무의 습성인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죽을만큼 다 잘라내는 건 아니다. 아마 이달말이나 다음달 초에는 붉게 익은 피자두를 맛나게 깨물어 먹지 않을까 기대한다.
향나무 녹병과 모과나무 적성병
아직 시작도 못한 농사도 많다. 콩은 아직 씨도 뿌리지 못했다. 올 봄 두달 넘게 비 한방울 내리지 않았기에 호박이나 오이는 모종을 심었음에도 심는 족족 말라죽어버렸다. 또 씨를 뿌렸음에도 싹이 나지 않아 애태우던 작물은 이번 몇 일 내린 비에 뒤늦게 싹을 틔운 경우도 있다. 오랜전에 씨를 뿌리고 싹이 나지 않아다른 종자를 뿌렸는데 마구 섞여서 씨앗이 올라오기도 한다. 벌써 한달 전에 싹을 틔워서 엄지손가락만큼 자랐어야 할 당근이나 비트도 이제 겨우 비실비실 싹을 틔웠다. 한여름엔 캐야 할텐데 그때까지도 반절 밖에 자라지 못할 것 같다. 또 있다. 장맛비 맞으면서 심는다는 들깨도 아직 감자를 캐지 않았기에 그 자리에 심어야 한다. 가뭄이 길어지면서 감자가 제대로 여물지 못해서 좀더 크라고 지켜복 있는데 그러다보면 평소보다 일주일씩은 수확과 이어심는게 늦어지고 있다. 그나마 들깨나 콩은 6월 안에만 심으면 자라서 꽃피고 열매가 생기는 터라 걱정을 덜 하다. 그런데 벼농사는 조금 늦어지고 있어 걱정이다. 마을 아저씨와 나는 무언의 협약을 맺고 공동으로 벼농사를 짓는다. 나는 아저씨의 하우스나 집에서 발생하는 배관이나 배선, 기계 고장을 고쳐주고 아저씨는 내 밭과 논을 로타리 쳐주신다. 그리고 아저씨가 벼를 심을 때 내 논에도 심어주고 수확때도 마찬가지로 탈곡을 해 주신다. 요즘 어저씨께서 엄청 바쁘신지 아직 논에 로타리도 치질 못했다. 언제 로타리를 치는지 물어보기도 죄송해서 그냥 기다리고 있는데 언제쯤 하겠다는 얘기라도 해주면 좋을텐데.....
요즘 나무의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주중엔 기간제로 출근하고 주말엔 농사지면서 주경야독을 넘어 열공을 한다. 책에서 배운 수목병리학 중에 녹병 분야가 있다. 향나무 녹병이라고도 하고, 배나무 적성병이라고도 하고, 모과나무 적성병이라고도 하는데 모두 한가지 병균이 일으키는 병이다. 적성병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붉은별무늬병이 나무의 잎에 생기는 병이다. 이 병은 초봄에는 배나무와 모과나무의 잎사귀에서 작은 붉은별 무늬를 보여주다가 점점 커지고 가지나 잎전체가 붉어진다. 그러다가 6월이 되면 향나무로 옮겨가서 겨울을 나면서 향나무를 병들이고 봄이 되면 또 배나무와 모과나무로 와서 나무를 병들이고 고사시킨다. 올해 야심차게 돌배나무를 몇 그루 심었는데 나무 뒤에 묘지가 있고 그 옆에 있는 향나무 때문에 녹병이 창궐했다. 이 병을 어찌할까 고민이다. 향나무를 베어내고 싶지만, 묘지나 나무는 내 소유가 아니다. 조선시대 실학자 서유구 선생은 행포지라는 서적에서 향나무와 배나무의 관계를 이야기 하면서 붉은별무늬병을 언급한 바 있다. 이미 백수십년전부터 살아온 끈질긴 수목병이라는게 정말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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