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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물
봉구와 양이 본문
멧골에서 살면서 이웃 사람들보다도 더 자주 만나고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이 있다. 지금은 세대를 건너뛰어서 처음에 만났던 아이들은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처음 만났던 양이와 봉구를 빼고는 동물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봉구는 2018년 가을에 태어난 숫캉아지이고, 양이는 세 마리의 새끼를 둔 네 살된 암코양이다. 내가 멧골 흙집에 이사 오기 한달 전에 집 상태를 살피러 간적이 있었는데, 그때 양지바른 마당 위 툇마루에 앉아 사이좋은 오누이처럼 꼬리를 치며 머리를 비비던 녀석들이 봉구와 양이였다. 둘 다 뒷집 자연인 신종영씨가 키우는 동물이었는데, 착한주인을 닮아서인지 강아지와 고양이는 내게 거부감 없이 먼저 다가왔다. 아랫집 자유의 표현에 의하면 신종영씨는 강아지와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많이 주면 그만큼 게으르고 자기 할 일을 안하기 때문에 조금만 준다고 했다. 주인이 먹을 것을 조금밖에 주지 않아서 봉구와 양이는 늘 배가 고프고 외지사람에 다가가고 그러면 먹을 것이 생기는 버릇이 생겼는지도 모른다(사실 이건 확인해볼 필요가 있기도 하다. 나중에 신종영씨의 부탁으로 고양이와 강아지의 사료를 사다 준적이 있었는데 따로 구분해서 밥을 주는게 아니라 그냥 만원짜리 개사료를 사서 함께 밥을 주고 있었다)
봉구의 원래 이름은 ‘야~’ 였었다. 신종영씨는 봉구나 양이, 양이새끼들에게 밥을 줄때마다 ‘야~’ 라고 소리쳐 불렀다. 그러다 내가 신종영씨에게 강아지 이름을 제대로 지어주자고 했더니 봉구와 00를 불러주기에 난 봉구로 정했다. 봉구는 신종영씨가 몇 년전 키우던 개의 손주였다. 그 개가 새끼를 낳았고, 그 새끼를 아랫마을로 분양했다. 그 얼마뒤에 신종영씨가 키우던 개가 죽었고 아랫마을로 분양되었던 암강아지가 커서 새끼를 낳았는데 그 새끼를 가져온 게 봉구였다. 약간의 누런색 바탕에 쫑긋한 귀와 겁먹은 듯한 동그란 눈동자, 길고 뾰족한 턱이 마치 사막여우새끼를 닮았다. 크기도 한국의 발발이만해서 위협적이지 않은 편이었는데, 유독 오토바이를 타는 우체부와 택배기사에게는 아주 사납게 짖으며 달라붙곤 했다. 난 우체부와 택배기사님께 미안해서 집앞 50미터 앞에 우체통과 택배통을 달아놓고 거기에 우편물을 두고 가라고 했다. 봉구는 아기 강아지때부터 양이와 양이새끼 세 마리와 함께 지내서인지 양이를 엄마대하듯 했다. 그러나 양이의 새끼들한테는 아주 건방진 오빠나 형님 행세를 하곤 했다. 가끔 먹을 것을 두고 고양이들과 다투다가 양이한테 빰다구를 맞으면 그게 분해서 양이의 새끼들한테 으르렁 거리면서 괴롭히기도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한가족이었고 봉구는 양이가 누워있을 때 다가가서 목덜미를 깨무는 걸 좋아했다. 양이도 가려운곳을 긁어줘 좋은지 가만히 있는 모습에 집에 놀러온 사람들은 신기하게 바라보곤 했다.
양이의 원래 이름은 미미였다. 그러나 신종영씨는 강아지던 고양이던 야~라고 불렀는데 난 그게 맘에 들지 않아서 그냥 고양이에서 이름을 따와 양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성은 고씨가 된다. 양이는 콧잔등과 목덜미, 다리에 하얀 털과 몸통의 잿빛털이 잘 어울리는 아주 순한 고양이이다. 내가 외부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난후 뼈다귀나 생선을 싸와서 ‘양이야’ 라고 소리치면 어디 있었는지 모르지만 봉구와 함깨 양이와 그 아이들이 쏜살같이 달려왔다. 양이의 새끼들은 나비와 나비투로 이름 붙였고, 나머지 한 마리는 외톨이라고 이름 붙였다. 외톨이는 워낙에 사람을 피하고 자기들끼리도 홀로 동떨어져서 지냈는데, 늘 봉구의 폭정을 피해 나무위로 달아나고 쌓아놓은 장작위로 올라가 지내곤 했다. 양이도 암컷이고 새끼 세 마리도 모두 암컷이었다. 그들이 5월이 되면서 모두들 임신을 했다. 그리고 6월에 새끼를 낳았는데 고양이들은 새끼들을 집에서 낳지 않고 집과 조금 떨어진 풀숲이나 돌밑에서 낳아 키웠다. 그러다가 새끼들이 조금씩 뛰어다닐때가 되자 집 주변은 온통 고양이 새끼로 넘쳐났다. 양이가 세 마리, 나비는 네 마리, 나비투도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도합 열 네마리의 고양이가 살게 되어 그야말로 고양이 천국이 되었다. 처음에는 하두 고양이들이 많아서 이름을 붙여줄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또 아비가 한 마리이다 보니 새끼들이 다 비슷비슷해서 누가 누구새끼인지도 구분할 수 없었다. 고양이 어미들은 자기새끼와 다른 어미새끼를 구분하지 않고 핧아주고 놀아주고 젖을 물렸다. 양이는 자기가 낳은 새끼들의 젖도 물리고 손주들에게도 젖을 물리면서 고양이집안의 할머니가 되었다. 그런데 여름이 지나고 고양이들이 제법 뛰어다닐때가 되자 그 많던 고양이들이 어느날 순식간에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양이와 외톨이, 겁쟁이, 쭈쭈만 난게 되었다. 모두들 양이의 후손들인데 외톨이는 양이에게서 직접 태어난 자손이고 겁쟁이와 쭈쭈는 누구의 새끼인지 모르지만, 여름에 태어나 자라난 아이들이다. 쭈쭈는 하얀색과 검정색의 털을 가진 것으로 봐서 양이의 새끼인 것 같다. 숫컷이었는데 다 커서도 양이의 젖을 빨려고 해서 쭈쭈라 이름 붙였고, 수컷이었다. 겁이 없어 강아지 봉구한테도 제법 대들고 신동이의 얼굴도 할퀴는 대범함을 보였는데 유독 사람은 무서워했다. 그러다가 지난 겨울 외톨이가 임신을 할 즈음에 양이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봉구는 눈치빠르고 영리했다. 특히 먹는 것에 있어서 내가 고양이들과 봉구를 동일하게 주다보면 자기 것을 잽싸게 물고 집에 가져다놓고 또 와서 받아먹거나 옆의 고양이것을 빼앗아먹곤 했다. 또 내가 맛있게 먹는 것은 봉구도 따라서 맛있게 먹으며 내 맘을 사려고 했다. 특히 봉구는 수박을 좋아했는데 잘 익은 수박도 좋아했지만 약간 단단한 수박껍질을 아삭아삭 씹으면서 더 달라고 매달렸다. 밤도 좋아하곤 했는데 삶은 밥 껍질을 벗기고 부드러운 알맹이를 주면 덥석 물고 처마밑으로 가서 오물오물 씹어 먹는것도 좋아했다. 한번은 밤을 주우러 차를 몰고 임도를 지나 산속을 깊이 간적이 있는데 난 밤을 줍다가 깜짝 놀랐다. 뭔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놀래서 소리를 지를뻔 했는데 다름 아닌 봉구가 나타난 것이다. 혹시 봉구가 아닌 들개인가 아닐까 싶어서 ‘봉구’ 하고 불렀더니 꼬리를 치며 얼릉 달라붙었다. 무서운 산속에서 작지만 그래도 봉구가 옆에 있으니 정말 든든했다. 혹여 멧돼지가 나온다 해도 봉구가 먼저 알고 소릴칠 거라는 믿음에 휴대폰 음악도 꺼버렸다. 밤을 모두 줍고 나서 집으로 오는길에 봉구가 고마워서 차에 태우고 왔다 봉구는 창밖을 보면서 기가 죽었는지 아주 놀래서 안절부절했다. 그러다 집에와서 차에서 내리려는데 그만 오줌을 지려버렸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서도 익숙한 집앞의 풍경을 보고도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정말 눈깜짝할 사이에 수키로미터를 이동했으니 오죽했을까? 그러면서 봉구는 자동차의 위력을 알았는지 내가 매동제 저수지를 넘어설 때쯤이면 차소리를 듣고 200여미터를 마중나와서 길을 안내하곤 했다 마치 만화영화에 나오는 강아지처럼 귀를 세우고 꼬리를 흔들면서 자동차앞을 거침없이 뛰어서 집으로 돌아올 때면 난 만화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강아지 한 마리가 더 늘어나는 일이 생겼다. 내가 멧돼지로 골치가 아픈 수확철이었는데 봉구는 멧돼지가 오면 짓지도 않고 그저 피해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큰 개를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진도에 있는 처갓집에서 강아지 두 마리가 태어났고 한 마리를 가져가라고 해서 추석에 데려왔다. 진도군 신동리에서 가져왔기에 이름을 신동이라 지었다. 신동이는 온몸이 온통 흰색이었는데 어미는 누런 진돗개였다. 태어난지 두달된 신동이를 본 봉구는 아주 신이났다. 덩치는 저보다 더 크지만, 아직 어리고 느려터진 녀석이라 맘대로 물어뜯고 괴롭히면서 고양이들만이 있는 멧골에서 왕처럼 군림했다.
2019년 가을, 뜻하지 않는 사고가 발생했다. 봉구와 신동이는 내가 외출갔다가 돌아올때면 자동차소리를 듣고 동고저수지까지 달려나오곤 했다. 그런데 봉구는 자동차의 무서움을 알았기에 달리는 자동차를 보고 달려왔다가도 바퀴를 비켜 피하는데 신동이는 그런 경황도 없이 내차에 치여죽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고 봉구는 슬피울고 맥없이 지내곤 했다. 그러다가 옆집의 큰개가 줄이 풀리면서 우리집 근처에 있던 봉구를 물어죽였다. 옆집 형님은 몹시 미안해 하면서 다른 강아지를 하나구해주마 했지만, 정작 강아지 주인은 집에 없었다. 나는 자유와 함께 죽은 봉구를 앞 밭에 묻어주었다. 그리고 강아지 주인인 신종영씨가 돌아왔기에 옆집 큰개에 물려죽은 사실을 얘기하고 앞밭에 묻어주었다고 얘기해 주었다. 봉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신종영씨는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다.
신동이와 봉구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양이 패밀리가 보이지 않았다. 양이와 양이의 딸인 나비와 나비투도 보이지 않았다. 고양이가 어른이 되면 이소를 한다고 하지만, 왜 양이와 양이의 애기들, 나비와 나비투의 애기들까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추측을 해본다면 양이는 자신의 수명이 다해 죽을 자리를 찾아간 것이 아닌가 싶고, 나비와 나비투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간 것이 아닐까? 그리고 지금 남아있는 고양이는 양이의 막내딸인 외톨이와 형제 겁쟁이, 그리고 외톨이 애기들이다. 외톨이는 작년 가을에 네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네 마리 중에 한 마리는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보이지 않았고 세 마리만이 자주 눈에 띠였다. 나는 신동이를 키우면서 사 놓았던 고급(?)개사료가 있었기에 그것을 고양이 새끼들에게 주었다. 그리고 고양이 마다 이름을 붙여주었다. 가장 사람을 잘 따르는 잿빛바탕에 검은 줄무늬를 가진 녀석은 ‘쿠로’라고 불렀는데 이름은 잠깐 놀러왔었던 일본 청년 ‘다쿠미’상이 지었다, 두 번째로 사람을 잘 따르는 고양이는 ‘가을’이다. 멧골의 고양이들이 주로 흰색과 검정색(양이) 또는 잿빛 바탕에 검정이나 흰색의 무늬를 가지고 있었는데 가을이는 노르스름한 색상과 검정, 잿빛이 섞여있는 삼색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을 무척이나 경계하고 조심성 많은 녀석은 ‘까무’라고 지었다. 가장 몸집이 작고 늘 불안한 눈동자를 가지고 사람을 경계해서 좀처럼 한번 안아볼수도 없는 녀석이었다. 나는 양이의 새끼들때부터 밥을 주고 고기를 구해다 먹이면서 그녀석들을 한번 안아보고 쓰다듬어 주고 싶었는데 먹이만 낼름 먹을 뿐 도통 사람의 손길을 허락하지 않아 화가 났다. 그래서 약간 무리를 해서라도 이놈들을 내편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맘먹었다 마침 일본인 신종영씨도 일본을 가서 밥줄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맛있는 고기로 고양이 새끼들을 유인해서 쿠로를 잡았다. 우선 쿠로를 화장실에 넣어놓고 하루동안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쿠로는 야옹~ 야옹하면서 배고프다는 뜻인지 무섭다는 뜻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하루뒤에 문을 열어주자 쿠로는 내가 자신을 구해준 은인인 것으로 알고 졸졸 따라 다녔다. 그리고 먹을 것을 몇일 주며 이름을 부르면 쏜살같이 다가와 품에 안기곤 했다 이런 쿠로의 변화에 난 자신감을 얻고 이번엔 가을이를 붙잡아서 화장실에 가두었다. 하루가 지나서 가을이에게 문을 열어주었는데 녀석은 쿠로와 달리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난 모질게 맘먹고 하루더 가두었다가 가을이가 열어달라는 애절한 목소리를 낼 때 꺼내주었다. 그 후 가을이도 내가 부르면 멀리서도 다가오는게 영락없는 개냥이가 되었다. 마지막은 까무차례였다. 까무를 붙들어서 화장실에 넣어놓고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야생성 강하고 사람 경계하는 까무야말로 이틀 이상을 가두어야 했는데 내가 담날 일정이 있는 까닭에 하루만에 꺼내주었다. 그래서일까? 까무는 가을이가 다가오면 함께 다가오지만 혼자서는 먼저 다가오지 않고 있다.
요새 까무는 새끼를 임신했다. 숫코양이 한 마리가 주위를 배회하곤 했는데 이녀석이 외톨이와 까무까지 모두 임신시킨 듯하다. 배가 불룩하니 올라오고 먹을것이 생기면 아주 악착같이 먹어댄다. 그리고 경주에서 태어나 서울생활을 하며 산전수전 겪은 한비가 멧골 고양이 패밀리들한테 늘 쫒겨다닌다. 그래도 천적이 있는건지 어떤지 한비는 보름이한테는 아주 갑질을 한다. 보름이가 저보다 덩치도 더 크고 온갖 고양이를 다 괴롭히는 녀석인데 한비는 보름이의 따귀를 한 대 때리면서 기선을 제압했다. 그리고는 보름이 집에 들어앉아 버렸다. 보름이의 약한 모습인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요새 멧골에 가면 외톨이와 형제인 겁쟁이, 그리고 외톨이 새끼인 가을이와 까무, 그리고 서울아가씨인 한비를 만날 수 있다. 집 한쪽 구석엔 약 5미터 길이의 줄에 매여 이리뛰고 저리뛰는 보름이로 만날 수 있다. 담달이면 고양이 가족이 또 열 마리쯤 늘어나는 모습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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