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물

흰 바람벽이 있어 본문

사는 이야기/엉클박의 시익는 마을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은 어제보다 2022. 12. 7. 13:15
반응형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 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사쓰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건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차가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앉아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 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세상을 살러가는데
내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픈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 프랑시스 쨈’ 과 도연명과 ‘ 라이넬 마리아 릴케’ 그러 하듯이

백석//< 선생님과 함께 읽는 백석>

*바람벽 : 방이나 칸살의 옆을 둘러막은 둘레의 벽.
*촉(燭) : 촉광. 빛의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
*때글은 : 때에 그은. 때가 묻어 검게 된.
*앞대 : 남쪽. 여기서는 한반도 남쪽 바다를 의미함.
*개포 : ‘개’의 평북 방언.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
*이즈막하야 : 시간이 이슥하게 지나서.
*울력 :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여 일함.
*눈질 : 눈으로 흘끔 보는 것.

……………..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나

내 가슴은
뜨거운 것으로
호젖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고향을 멀리떠나 만주 찬겨울 토굴같은 방에서 식민지 지식인의 고독~!
이영학의 그리움이 그렇고,윤동주의 참회록이 그렇듯이
자신의 영혼밖에는 의지할 곳이 없는 절대고독
그영혼은 가난해야 하며
외롭고 쓸쓸하지만
높이 있어야 한다

이 영혼에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건네는 달디단 따끈한 감주가 건네지고 있다.
사랑으로 슬픔으로~!

........

텅빈공간의 텅빈주체의 무게을 이기지 못해,
내 영혼의 공간을 차지해버린 이물질에 숨막혀
밤의 뒷꽁무니에서 실을 뽑아 쪽팔리게 연명하는 영혼은 날카로운 쓸쓸함!!

빈 보석상자속 공백의 반짝임에
외로움이 시작된 텅빈 그곳에서
원초의 내속 분열이 너를 만나
숨소리를 얻는 곳
투르넬다리 흰대리석 성모자상앞에서
기타치던 그 남자의 그곳이 필요한 간절함

고독의 보자기에 쌓인 생의 선물들
가난한 외로움이 높고 당당하니
당신이 아름답다
아름다움의 주소는 그곳인가보다!
(2019.7.30)

———-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내 맘대로 할꺼야 !
뜨거운 것으로 사랑으로
네 맘대로 해!
호젓한 것으로 슬픔으로

사이 사이에 유리벽이 처지고
세상과 나 사이에
너와 나 사이에
어제와 오늘 사이에
머리와 심장 사이에
유리벽이 처지고
사랑은 슬픔과 이별하고
뜨거운 것은 호젓한 것과 이별하고
가난한 것과 높은 것은 이별하고

외로움은 외로움과 이별하고
쓸쓸함이 쓸쓸함과 이별하고
고독이 고독과 이별하고
사랑이 사랑과 이별하고
내가 나랑 이별한다

유리병 속 바비 인형처럼
고독은 통증이 되고
외로움은 공백을 잃고
쓸쓸함이 그리움을 잃고
슬픔은 호젓함을 잃고
뜨거운 사랑은 계산의 영역에 안긴다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 내 마음속으로
외로움과 쓸쓸함과 고독과 사랑과 슬픔과
그리고 너와 나를 초대하리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 프랑시스 쨈’ 과 도연명과 ‘ 라이넬 마리아 릴케’와 네가 그러 하듯이
(2022.01.01)

SMALL

'사는 이야기 > 엉클박의 시익는 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우는 해  (0) 2022.12.07
그리움  (0) 2022.12.07
빨래  (0) 2022.12.07
풀잎, 나자신의 노래  (0) 2022.12.07
자화상  (0) 2022.12.07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