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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엉클박의 시익는 마을

납치의 시

오늘은 어제보다 2022. 12. 10.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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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의 시

시인에게
납치된 적이 있는가.
만약 내가 시인이라면
당신을 납치할 거야.
나의 시구와 운율 속에
당신을 집어넣고
롱아일랜드의 존스 해변이나
혹은 어쩌면 코니아일랜드로
혹은 어쩌면 곧바로 우리 집으로 데려갈 거야.
라일락 꽃으로 당신을 노래하고
당신에게 흠뻑 비를 맞히고
내 시야를 완성시키기 위해
당신을 해변과 뒤섞을 거야.
당신을 위해 현악기를 연주하고
내 사랑 노래를 바치고
당신을 얻기 위해선 어떤 것도 할 거야.
붉은색 검은색 초록색으로 당신을 두르고
엄마에게 보여줄 거야.
그래, 만약 내가 시인이라면
당신을 납치할 거야.

// 니키 지오바니

————

나를 납치할 꺼야
소 매물도 작은마을로
카리브해 말라콘 해변으로
보스포로스 쪽빛 해협으로
탱코의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나를 납치할꺼야
타르타로스 깊은 심연에 갇혀 있는 어두움으로 부터
켭켭히 쌓여 눈물조차 틈을 내주지 못한 슬픔으로 부터
올려 보기만 하고 필 때를 기다리기만 한 부끄러운 사랑으로 부터
사막의 낙타같고, 정글의 사자같은 고행과 사냥으로 부터
해 질녘 석양에 드리운 내 그림자의 텅빈 공간으로 부터
내가 시인이라면

시는 내게
내 깊은 속 작은 밀실 어린아이에게 문을 열어주고
그 방들 사이 벽을 터주다.
엉덩이를 토닥여 주고
응원도 해주는
네가 첫 키스만큼 좋다

시는 나의 말은 대신 해주는 이
벙어리 냉가슴 앓이 하던 말줄기를 딱 맞춤형으로잘 다듬어 놓았다.
유비쿼터스처럼 편리하고 풍성하게 말 얻지 못한 꿈을 응원한다

뜨겁고 슬추고 호젓하고 뒤틀려서
늘 뒤죽박죽, 엉망진창인 심통을
산안개처럼 덮었다가
골바람처럼 씻어내기도 한다

날 도깨비가 되었다가 엄한 선생님이 되었다가 엄마 누나처럼 따뜻하기도 하고
막걸리한잔 김치 한점에 세상을 떨어 넣는 친구가 되기도 한다
설레임과 흥분은 마약을 넘고 분명함과 돌아봄은 지국천왕의 상벌보다 깨달음이 높다

곳간에 곡식이 가득한데 여느 바보가 농삿일 하겠는가?
시인이 되지말고 있는 시를 옆에 두고 제 것처럼 사용하면 된다
네가 있어 내가 부자이다
시가 옆에 있어 여유와 풍요도 같이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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