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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제8회 철원DMZ국제 평화마라톤 대회 참가기

오늘은 어제보다 2011. 9. 22.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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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일시: 2011년 9월4일

철원들판의 기분좋은 배꼽인사-힘내세요.

 

2011년 9월 4일, 날씨는 매우 쾌청하고, 기온도 맑았다. 바람도 살살 불어오는 것이 여름 달리기에는 매우 좋은 조건이었다. 지난해에는 새벽 내내 비가 내리다가 출발 당시가 되어서야 개였었는데......오늘은 오후에 더워질지는 모르지만, 아침은 매우 상쾌하고 기분이 좋았다. 풀코스를 처음 달린다는 긴장감은 팬츠의 뒷주머니에 넣어둔 파워젤을 자꾸 확인하게 만들었고, 출발 몇 분전에는 긴장해서 화장실을 다녀오게 만들었다. 혹시나 달리다가 힘이 빠지면 파워젤을 먹고 힘을 내서 달릴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이 자꾸 파워젤을 빠뜨리지 않았는가 확인하게 하였다. 출발선에 서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심호흡으로 달래며 출발신호가 울리기를 기다렸다. 출발을 알리는 카운트다운과 함께 출발이라는 외침에 이어 축포가 울렸다. 선수들은 모두들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무리의 맨 뒷 그룹에서 뛰기로 맘먹고 오늘 목표를 4시간 20분 이내에 완주하는 것으로 정했다. 무리의 뒤에서 풀코스 첫 발을 뛴 느낌은 여타의 코스와 달리 머나먼 인생길을 단단히 준비하고 마치 개나리봇짐을 메고 천리길을 간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달리는 선수들의 다리나 몸짓, 자세에서는 서두르지 않는 고수의 노련함과 마라톤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고석정을 출발해서 몸을 푼다는 느낌으로 조금씩 달리며 8km정도 달렸는데 한 무리의 선수들이 빠르게 나를 앞질러 나갔다. 이제껏 내 뒤에서 달린 것도 아닐텐데 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 하프선수들의 선두권이 지나가는 것이란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얼마동안을 하프선수들과 함께 달렸다. 어느 삼거리에서 하프코스 선수들은 오른쪽으로 달려갔고 나는 왼쪽길로 들어섰다. 달리는 선수들이 부쩍 줄어들었고 거리는 많이 한산했다. 경쟁하는 사람들이 없어서인지 달리는 것이 좀 힘들어졌고 몸에서는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위안은 군부대가 많다는 것이었다. 부대 앞을 지날 때면 군인들이 나와서 신나게 응원을 해주고 하이파이브까지 해주었다. 그들에게 고맙다거나 수고하라는 얘기를 건네며 또 부끄럽지 않으려고 자세를 바르게 갖추고 달려 나갔다. 노동당사를 오른쪽에 두고 좀 더 달려나가니 DMZ을 알리는 검문소가 있고,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들의 박수를 받으며 드디어 내가 원하던 비무장지대안에 들어섰다. 지난해 대회 10km를 달리면서 명칭이 DMZ인데 그곳을 달려보지 않고 무슨 DMZ대회에 참여한것인가 라는 한탄을 했었는데 오늘은 확실히 명칭에 맞는 대회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19km를 달리면서 왼쪽 복숭아뼈 안쪽이 조금씩 당겨왔다. 마침 앞에서 스프레이를 뿌려주는 스텝을 만났고, 나는 무릎과 발목에 스프레이를 뿌렸다. 태어나서 처음 뿌려보는 스프레이였다. 지금껏 달리면서 앞이나 주변에서 스프레이 냄새가 나면 나는 속으로 인상을 쓰면서 ‘사람들 많은 이런데서 냄새나는 저런 것을 왜 쓰나’ 했었는데, 결국 내가 스프레이를 뿌려서 달리는 사람들의 후각에 인상을 쓰게 만들었다. 내가 아파보고서야 그들의 절박한 처지가 이해가 되었다.

 

마라톤은 어떠한 운동보다도 체력과 함께 심리가 많은 부분 작용하는 운동이었다. 아무리 몸이 펄펄 날 것 처럼 가볍다가도 막상 달리기 시작해서 한번 마음이 지치거나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 달리는 것 자체가 고난이고 역경이며, 왜 달려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되묻는 운동이었다. 연습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름대로 기록을 단축하고자 하는 욕심에 열심히 달리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몇 미터를 잘못 달리면 그게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고, 달리는 내내 생각나게 하였다. 달리기 전에도 온갖 생각이 갈등하는 운동이 마라톤이었다. 처음에 빨리 달리고 나중에 늦게 달리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처음에 천천히 달리고 나중에 빨리 달리는 것이 좋을지 고민을 하지만, 대개는 처음 빨리 달리고 나중에 지치고 말았다. 마라톤 사이트나 선배 고수들은 처음에 천천히 달리면서 몸 상태를 보라고 하지만, 실상 이론과 현실은 달랐다. 남들이 달려 나가면 그들에게 뒤 쳐지면서 이미 자신감이 상실되어 나중에 따라가는 것이 어려운 경우도 허다했다. 그렇다고 같이 빨리 달리면 금방 지쳐서 흐느적거리기도 일쑤였다. 결국은 연습량이었다. 연습량을 늘려가면서 또 연습량에서의 속도를 빨리해가면서 자신감을 함께 쌓아가야만 좋은 기록이 가능했다. 그것을 무시하고 천천히 오래달리기만 많이 했다고 해서 기록이 좋아질 수 없었고, 빨리 달리기만 해서 오래 달릴 수가 없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달리다보니 28km에 이르렀다. 저 앞에 민간인 통제구역의 검문소가 보였다. 검문소를 지나면서 오른쪽으로 길이 굽었고, 약간의 언덕이 나타났다. 나의 몸은 지금까지 연습했던 거리 이상을 달린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나타나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연습한 거리 중에서 가장 오래 달린 것이 28km 였다. 2주전에 28km를 3시간에 달린 뒤 몇 일 동안 다리를 절면서 근육통증을 느꼈었다. 오늘은 오직 완주만을 목표로 해서 천천히 달렸기에 이미 3시간은 넘어섰다. 지금처럼 계속 달린다면 아마 4시간 30분에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알 수 없었다. 앞으로 달릴 수 있는 체력이 얼마나 남았는지 얼마만큼의 속력을 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나는 긴급처방으로 파워젤을 하나 먹었다. 파워젤을 먹으며 속도를 더 늦추어 걷는듯 뛰는듯 했다. 32km미터를 지날 지점에서 4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가 앞질러 지나갔다. (아~ 그럼)

나는 오늘 4시간 40분안에 들어가는것도 어렵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목표를 5시간으로 수정했다. 억지로 억지로 35km를 지났다. 너무 힘이 빠진다는 생각에 파워젤을 하나 더 먹었다. 파워젤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곰처럼 힘이 솟거나 금방 파워풀해 진다는 느낌을 가질 수가 없었다. 파워젤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걷기 시작했다. 결국 연습부족이라는 자책을 하면서 5시간 완주를 목표로 걸었다. 사실 맘을 다잡아 먹었으면 적어도 걷지 않고 뛸 수가 있었지만, 나는 아내의 간절한(?) 부탁을 외면하지 못했다. 아내는 내게 온힘을 다 쏟아서 달리고 나면 우리가 목표로 하는 아이갖기는 어떡할거냐면서 아이를 위해서 무리하지 말고 힘을 남겨달라고 했었다.ㅎㅎㅎㅎㅎ 아내의 부탁대로 힘을 남겨 걷다보니 지금까지 한 두어달간 연습한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철원 대회는 나의 마라톤 시작점이다. 지난해 나는 처음으로 마라톤을 시작했고, 마라톤의 입문 첫 대회로 제7회 철원 DMZ국제평화 마라톤대회 10km 코스에 참가했었다. 고작 10km를 달리면서도 혹시 무리해서 쓰러지면 대회에 민폐가 되지 않을까하는 조바심에 조금만 숨이 차면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걷곤 했었다.ㅋㅋㅋ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달리기를 하러 온 건지 아니면 동네 운동회에 나온 것인지.....그만큼 달리기에 대한 기초체력도 없었고 혹시 달리다가 쓰러지면 어쩌나 라는 겁이 많이 있었다. 지난해 철원대회를 참여하여 너른 철원 평야를 달리면서 나는 약속을 하나 했다. 오늘은 비록 10km로 시작을 했지만, 1년간 연습을 통해서 내년에는 반드시 풀코스에 도전해서 비무장지대 안쪽을 달려보아야겠다고.....그렇게 1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동안 10km는 6회, 하프대회는 2번의 완주를 했다. 지난해 처음 시작한 철원대회는 10km를 1시간7분에 뛰었지만, 가장 최근의 대회에서는 10km를 47분에 달렸다. 그만큼 속력도 좋아지고 건강도 좋아졌다.

 

2011년 7월이 되면서 나는 제8회 철원 DMZ국제평화 마라톤대회 풀코스에 당당히 신청을 했다. 7월과 8월, 두 달간 연습을 하면 풀코스를 4시간 이내에 완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나름대로 훈련 계획을 세웠다. 7월에는 1주일에 3일은 5km를 달리고, 주말에는 10km를 달린다. 8월에는 1주일에 3일은 10km를 달리고, 주말에는 10km에서 매주 5km씩 늘려간다. 그런데 착오가 생겼다. 매일 연습하는 것도 그렇고 주말에도 그렇고 올해는 비가 엄청나게 내렸다. 도대체 비 때문에 연습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태어나서 이렇게 긴 장마는 본적이 없을 정도였다. 결국 7월은 런닝머신 위에서 1시간씩 뛰는 것으로 대체하고 계획대로 달려보지도 못하고 지나가버렸다. 쌓이는 연습량이 없이 시간이 빠르게 흘러감에 따라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나 저제나 날씨가 맑기를 기다렸는데 7월 31에 날씨가 맑아서 처음으로 밖에 나와서 달려볼 기회가 생겼다. 인천대공원 정문에서 출발해서 후문을 지나 소래포구를 다녀오는 거리였다. 총거리는 16.77km였다. 런닝머신 위에서 연습할 때 만해도 나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 땅위를 달리면서 그 자신감은 상실되었고, 함께 연습하는 형들에게 나는 짐이 되고 말았다. 출발하기에 앞서 작은 물병에 얼음을 얼려 넣은 식수와 손수건, 화장지, 열쇠를 넣은 가방을 메고 힘차게 출발했다. 형들은 가장 가벼운 게 좋다고 가방을 벗어 놓을 것을 얘기했지만, 나는 오기로 괜찮다고 메고 달렸다. 인천대공원 후문을 지나 소래포구에 다다르자 고작 10km만을 달린 거리에서 나는 지쳐버렸다. 잠시 쉬는 동안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퍼졌고, 돌아 올 때는 다른 형이 내 가방을 메고 옆에서 함께 걸어주었다. 완전히 나 자신에 실망한 하루가 되고 말았다. 이젠 비가 오더라도 반드시 휴일에는 20km 이상씩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8월7일에는 21km에 도전했다. 지난 7월31일과 같이 물통을 넣은 가방을 메고 또 다시 오기로 도전했다. 그동안 주중에 달리기한 연습량 덕분에 근육이 단련되어 있기를 바랬지만, 나는 16km를 달리고 나서 또 지쳐버렸다. 이상했다. 5km만 더 달리면 되는데 왜 몸은 힘들어하고 걷기만을 좋아하는건지.....습관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어째서 이렇게 달리기 실력이 늘어나지 않을까 점점 걱정만 늘어갔다. 8월14일에는 26km를 연습했고, 8월21일에는 최종적으로 28km를 연습했다. 마라톤 사이트를 방문해서 대회에서 잘 달리는 법이나 연습 방법 등을 읽어보니 대회 2주를 앞두고 32km를 달려 보는 것이 좋다고 되어 있었다. 나는 대회 2주를 앞둔 시점에서 32km에 도전했으나 28km에 그치고 말았다. 그나마 지금까지 연습중에서 가장 긴 거리를 달려보았다는 것이 위안이었다. 28km를 달리고 나서 몇 일간은 계단도 제대로 오르내리지 못했고 무릎에 통증까지 느껴졌다. 이래서 고수들이 마라톤을 ‘32km를 달리고 다시 10km를 달린다’ 고 말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번 더 장거리를 연습할 수 있도록 마라톤 대회에 착오가 생겨서 대회 날짜가 1주일만 더 늘어났으면 하는 바램도 들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35km부터 걷기 시작해서 태봉대교를 지나 펜션이 잘 꾸며진 동네를 지났다. 저 멀리 대회를 알리는 애드벌룬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완주를 바로 눈앞에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나는 마지막 1-2km는 멋진 자세로 달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자세 좋게 달리기 시작했다. 몇km를 걸었기 때문인지 다시 달리는 다리는 가벼웠고, 몸도 마음도 완주를 앞에 두고 있어서 즐거웠다. 그렇게 finish라인 1km앞에 왔는데 아는 얼굴이 옆에 나타났다. 연습 때마다 늘 함께 하던 형이 기다리고 있다가 나의 첫 풀코스 완주를 축하하기위해 함께 달려준 것이다. 옆에서 구호 소리를 넣어주며 물도 뿌려주며 힘을 실어주었고 나는 두 팔을 크게 벌리며 고석정 출발점으로 들어왔다. 기록은 4시간 55분 26초였다.

 

오늘 철원대회는 내게 새로운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마라톤을 시작해서 나도 처음으로 풀코스를 완주했다는 뿌듯함을 심어주었고, 이후 풀코스대회에 출전해도 달리다가 쓰러지는 민폐는 주지 않겠구나 라는 안도감을 주었다. 대회를 2달 앞두고 연습에 들어가는 것은 내게는 시간이 부족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내년 대회는 4시간 이내에 완주를 목표로 좀 더 일찍 연습을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넓고 넓은 황금들판과 시원한 바람, 맑은 공기가 넘쳐나는 코스는 달림이들에게 달림 그 자체로 상쾌함을 불어넣어 주었다. 다른 대회와 달리 도로에 차가 다니지 않는 것도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좋았다. 또 2.5km거리마다 음료수가 준비되어 있어서 더위를 식힐 수 있고 갈증을 풀 수 있어서 좋았다. 달리는 내내 중고생들이 자원봉사를 나와서 ‘힘내세요’ 라며 응원을 하고 배꼽인사를 예쁘게 하는 모습-집에 돌아와서도 그들의 순수한 배꼽 인사가 생각나고 기분이 좋아진다. 달림이 여러분 내년 철원대회에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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