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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엉클박의 시익는 마을

사라진 것들의 목록

오늘은 어제보다 2023. 2. 15.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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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들의 목록

골목이 사라졌다 골목 앞 라디오 수리점
사라지고 방범대원 딱딱이 소리
사라졌다 가로등 옆 육교 사라지고 파출소
뒷길 구멍가게 사라졌다 목화솜 타던
이불집 사라지고 서울 와서 늙은 목포댁 재봉틀 소리
사라졌다 마당 깊은 집 사라지고 가파른 언덕길도
사라졌다

돌아가는 삼각지 로터리가 사라지고 고전음악실
르네상스 사라지고 술집 석굴암이 사라졌다 귀거래다방
사라지고 동시상영관 아카데미하우스 사라졌다 문화책방
사라지고 굴레방다리 사라졌다 대한늬우스
사라지고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광고도
사라졌다

사라진 것들이 왜 이리 많은지 오늘의
뒤켠으로 사라진 것들 거짓말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런데 왜 옛날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스며드는 것일까
어느 끈이 그렇게 길까 우린 언제를 위해 지금을
살고 있는지 잠시 백기를 드는 기분으로
사라진 것들을 생각하네
내가 나에게서 사라진다는 것
누구나 구멍 하나쯤 파고 산다는 것일까
사라진 것처럼 큰 구멍은 없을 것이네

//천양희

……

그냥 있어 볼 길 밖에 없는 것들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인연들
바람이 소리를 만나고 , 소리가 구름을 만나는 기막힌 우연들

살아지면서 사라진다
나에게서 사라지는 건지!
내가 사라지는 건지 경계가 없다
시간의 외줄 타기

사라지기에
외롭고 그립고 쓸쓸할까!!
그 먼 세월과 장소와 물건과 사람과 놀이와 생각
그 각각에 찍혀 있는 기억, 기록, 회상의 사진들

백기든 기분으로
스며들고 사라지는 많은 나를 , 여러 색깔의 인연을 더듬는다
당신이 있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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