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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엉클박의 시익는 마을

홀로움은 환해진 외로움이니

오늘은 어제보다 2023. 2. 15.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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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움은 환해진 외로움이니

부동산은 없고
아버님이 유산으로 내리신 동산(動産) 상자 한 달 만에 풀어보니
마주앙 백포도주 5병,
호주산 적포도주 1병,
안동소주 400㏄ 1병,
짐빔(Jeam Beam) 반 병,
품 좁은 가을꽃 무늬 셔츠 하나,
잿빛 양말 4켤레,
그리고 웃으시는 사진 한 장.

가족 모두 집 나간 오후
꼭 끼는 가을꽃 무늬 셔츠 입고
잿빛 양말 신고
답답해 전축마저 잠재우고
화분 느티가 다른 화분보다 이파리에 살짝 먼저 가을물 칠한 베란다에
쪼그리고 앉아
실란(蘭) 꽃을 쳐다보며 앉아 있다.
조그맣고 투명한 개미 한 마리가 실란 줄기를 오르고 있다.
흔들리면 더 오를 생각 없는 듯 멈췄다가
다시 타기 시작한다.
흔들림, 멈춤, 또 흔들림, 멈춤
한참 후에야 꽃에 올랐다.
올라봐야 별 볼일 있겠는가,
그는 꼿꼿해진 생각처럼 쪼그리고 앉아 있다.
저녁 햇빛이 눈 높이로 나무줄기 사이를 헤집고 스며들어
베란다가 성화(聖畵) 속처럼 환해진다.
추억이란 애써 올라가
미처 내려오지 못하고 꼿꼿해진 생각이 아닐까.
어느샌가 실란이 배경 그림처럼 사라지고
개미만 투명하게 남는다.

그가 그만 내려오기를 기다린다.


//황동규<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

같이 살아야 살아진다
이웃과 같이 살고
나랑도 같이 살아야지

덕담이란
이웃과 따뜻하게
나에겐 환하게
지내라는 말이다

덕담이란
벽쌓기보다 허물고
고독을 맛들이고

덕담이란
혼술 혼밥보다는 같이 먹고 마시고
오르려 하지 말고
추억을 꼿꼿이
외로움울 환하게 하려는 것일께야

홀로움은 환해진 외로움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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