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는 여러 종류의 야생동물이 산다. 고라니, 너구리, 멧돼지, 두더지, 들쥐, 족제비, 오소리, 두꺼비, 맹꽁이, 개구리, 뱀, 고양이, 온갖 새들과 곤충들. 그들은 내가 내밭이라 부르는 토지에 머물기도 하고 집을 짓고 살기도 한다. 그들에게 있어 밭은 아주 좋은 놀이터이고 양식처이기도 하다. 봄이되면 난 그들의 놀이터를 파괴해 밭으로 만들고 작물을 심는다. 상추, 고추, 오이, 호박, 참외, 토마토, 가지,고구마, 감자를 심고 여름과 가을에는 수확을 한다. 그들은 내가 없는 사이 그 밭을 지배하며 놀이터로 만들고 내 농사를 파괴한다. 멧돼지는 온통 휘젓고 파버리며 쑥대밭을 만든다. 너구리는 옥수수를 기가 막히게 따먹는다. 메뚜기나 방아깨비는 갓나온 야채의 어린순을 모조리 갉아 먹는다. 땅속의 두더지도 온통 터널을 만들어 작물의 뿌리를 들뜨게 하고 뿌리작물도 갉아 먹는다.
내 밭이지만 내가 밭을 점유하는 시간은 일 년중 열흘 남짓. 나머지 시간은 야생동물들이 점유한다. 서로간의 절충점은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는 것. 덫이나 올무를 놓지않는 것.
내 밭에 살고있는 녀석들중 오늘 그동안 못보았던 동물의 죽음을 보았다. 밭 옆의 도랑은 내가 가끔 땀을 씻고 작물에 물을 떠날라 주는 수원이다. 거기에는 민물새우 토하가 살고, 토종 다슬기가 살고, 북방개구리도 산다.반딧불이 유충도 살만큼 깨끗함을 자랑한다. 그런 도랑에 이상한 동물이 빠져 죽었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녀석인데...안타깝다. 그래도 내밭에 산다는게 반갑다. 부디 다른 친구들은 죽지않고 오래 잘 살길 바란다. 부디 자연사로 제 수명을 다했길 바라며...고슴도치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