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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엉클박의 시익는 마을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오늘은 어제보다 2024. 3. 12.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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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목을 길게 뽑고 두 눈을 깊게 뜨고
저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는 저음으로 첼로를 켜며
비장한 밤의 첼로를 켜며
두 팔 가득 넘치는 외로움 너머로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그리움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러질 때까지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 태양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 위에 쓰러져
따스한 햇빛을 덮고 누웠고
달력 속에서 뚝, 뚝,
꽃잎 떨어지는 날이면
바람은 너의 숨결을 몰고와
측백의 어린 가지를 키웠다

그만큼 어디선가 희망이 자라오르고
무심히 저무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밤,
나는 너에게 가까이 가기 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수없는 나날이 셔터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꿈의 현상소에 당도했을 때
오~ 그러나 너는
그 어느 곳에서도 부재중이었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바람으로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고정희

………
흉터 남기는 상처처럼
사랑은 그리움을 남기고
다만 얼룩 무늬 보자기에 쌓여 있다

꿈의 현상소에 쌓여진 흑백 필름이되어
안기고 싶었던 가슴폭과
홀로 갖고 싶었던 다락방
사이 겹을 잃은 채
외로움과 그리움
슬픔과 추억
희망과 존재증명이 엉킨다

셔터속으로 사라진 수 많은 나날들
들켜버린 사랑과 꺼내보지 못한 사랑
그리고 바라보기만 사랑속에 웅크린 그리움은
외로움을 넘지 못한다

그리움은 부끄러움이 되고 눈물이 되어 울었다
같은 장마비속인데 벌레 먹은 개복숭같기도 하다가
부러움과 부끄러움너머 도도한 산수국 같기도 하다가
보물 상자 이었다가 금새 눈물상자가 된다
디아스포라와 마이너리티의 운명이 된다

경고 하건데
그리움은 머리 감지 않은 야경처럼
그리움을 함부로 꺼내지 말고 비밀의 방벽을 높여야 한다
그리움이 만든 비밀의 방에 외로움과 그리움들이
기대며 지내야 한다

네가 그리울 때 나는 울었다
마음으로 울었고 눈물은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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